일로코스의 연대┃바람과 파도가 빚은 품앗이의 대지
세계테마기행 – 4부. 함께해서 좋은 곳 일로코스┃협동과 나눔으로 일궈낸 필리핀 북서부의 유토피아
암석 해안의 장엄함 속에서 피어난 공동체 정신과 사탕수수밭의 달콤한 땀방울을 기록하다
- 바람과 파도가 깎아낸 카푸르푸라완의 흰 바위 언덕에서 자연의 경외감과 일로코스의 강인한 얼굴을 마주합니다.
- 종소리에 맞춰 온 마을이 모여 그물을 당기는 고기잡이 품앗이 ‘팍다닥리스’를 통해 상생의 가치를 체험합니다.
- 사탕수수 수확부터 발리쿠차 제조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의 과정을 함께하며 이방인이 아닌 친구가 되는 시간을 보냅니다.
- 수확의 절반을 이웃과 나누는 오랜 약속을 지켜온 사방안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을 묻습니다.
▌Travel Introduction: 시작하며
필리핀 촌캉스의 마지막 여정은 루손섬 북서부의 일로코스 지역으로 향하며, 그곳의 거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공동체의 꽃을 피운 사람들의 일상을 깊이 있게 담아냅니다. 일로코스는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함께’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땅으로, 척박한 해안가와 뜨거운 사탕수수밭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자연에 대항하기보다 서로의 어깨를 빌려 생존을 이어가는 ‘연대의 기술’을 수백 년간 전승해 왔습니다.
이번 4부의 핵심 키워드는 ‘나눔’과 ‘품앗이’로, 현대 사회가 잊어버린 상호 부조의 정신이 필리핀의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농부의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마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인 ‘바팅팅’에 반응하여 남녀노소 불문하고 바닷가로 모여드는 장면은, 효율성만을 따지는 도시적 삶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인 대목입니다. 잡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공평하게 나누고, 사탕수수를 베며 땀방울을 섞는 과정은 이번 촌캉스가 지향해 온 ‘관계 중심의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종착지입니다.
일로코스의 풍경은 카푸르푸라완 암석층의 차가운 미학에서 시작하여 사탕수수 식초인 수캉 일로코의 시큼한 풍미로 이어지며 시청자들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사탕수수를 끓이고 엿을 늘리는 투박한 손길마다 낯선 이방인을 기꺼이 식구로 맞아주는 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바캉스보다 즐겁고 휴양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던 필리핀 촌캉스의 대장정은, 혼자가 아닌 ‘우리’일 때 삶이 얼마나 달콤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찬란한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Travel The Main Discourse
Travel Episode 4. 함께해서 좋은 곳 일로코스 구성
- 대자연의 조각, 카푸르푸라완: 바람과 파도의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눈부신 백색 암석층을 탐방하며 일로코스 노르테의 장엄한 기개를 확인합니다.
- 해안의 약속, 팍다닥리스: 사방안 마을의 종소리 ‘바팅팅’을 신호로 주민들이 모여 거대한 그물을 함께 끄는 고기잡이 품앗이를 직접 체험하고 나눔의 원칙을 배웁니다.
- 사탕수수의 지혜, 산타마리아: 거친 밭에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압착하여 식초(수캉 일로코)와 엿(발리쿠차)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살피며 협동 노동의 가치를 조명합니다.
- 이방인에서 친구로: 9년 차 한국 농부의 진정성 있는 일손 돕기와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가 어우러져, 여행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우정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담습니다.
Travel Episode 4. 땀과 웃음으로 빚어낸 공동체의 향기
카푸르푸라완 암석층에서 마주한 일로코스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노농의 주름진 손길처럼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친 파도가 흰 바위를 깎아내듯 일로코스 사람들의 삶 또한 순탄치 않았으나, 그들은 그 거친 환경을 비관하는 대신 바다와 땅이 내어주는 최소한의 축복을 최대의 감사로 바꾸어 왔습니다. 사방안 마을의 가지밭에서 일손을 돕던 농부 큐레이터가 주민들과 나누는 소박한 새참과 웃음은, 국적과 문화를 초월하여 ‘땅을 일구는 사람’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으로 하나 되는 촌캉스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사방안 해안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단순히 고기를 잡으러 가자는 신호가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함께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서약과 같습니다. ‘팍다닥리스’라는 독특한 고기잡이 문화는 잡은 고기의 절반을 그물 주인이 갖고 나머지 절반은 참여한 모든 이가 공평하게 나누는 일로코스만의 유구한 법도입니다. 현대의 경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비효율적인 나눔이 마을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사실은, 땀 흘려 그물을 당기는 이들의 활기찬 얼굴을 통해 시각적으로 증명됩니다.
산타마리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진행되는 사탕수수 수확과 발리쿠차 제조 과정은 ‘협동’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무거운 기계로 압착하여 불 앞에서 쉼 없이 젓고 늘리는 일련의 과정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이웃의 손길이 보태져야만 완성될 수 있는 달콤한 결실입니다. 낯선 한국 농부가 그들의 고된 작업에 기꺼이 몸을 던졌을 때 현지인들이 보여준 환한 미소는, 이번 필리핀 촌캉스가 단순한 방문을 넘어 진심 어린 교류의 장이었음을 말해주며 전체 여정의 감동을 완성합니다.

▌Travel FAQ Section
Q: 일로코스의 고기잡이 문화인 ‘팍다닥리스(Pagdadaklis)’가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A: 팍다닥리스는 자본의 소유권(그물 주인)보다 노동의 기여와 생존의 권리(참여 주민)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공동체적 분배 시스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는 수확물을 독점하지 않고 마을 구성원 전체와 나누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스스로 구축하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풍요를 극대화하는 이 방식은, 각자도생의 길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 상생과 연대가 지속 가능한 삶의 유일한 해법임을 상기시킵니다.
Q: 사탕수수로 만든 ‘발리쿠차(Balikutsa)’는 어떤 특성을 가진 음식인가요?
A: 발리쿠차는 사탕수수 즙을 끓여 걸쭉하게 만든 시럽을 반복적으로 잡아당기고 늘려 공기를 주입함으로써 바삭하면서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을 구현한 필리핀식 전통 엿입니다. 우리나라의 가락엿 제조 방식과 매우 유사하며, 커피에 넣어 먹거나 간식으로 즐기는 일로코스 지역의 명물입니다. 대량의 사탕수수 수확과 수차례의 반복적인 노동이 필수적이기에 이 역시 마을 사람들의 협동 노동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통합니다.
Q: 일로코스 지역의 자연환경이 주민들의 성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요?
A: 일로코스는 필리핀 내에서도 기후가 건조하고 토양이 척박하기로 유명하여, 이곳 주민들은 예로부터 근면 성실하고 검소한 기질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강한 해안가와 고된 사탕수수 농업을 견뎌내기 위해 그들은 서로 돕는 ‘바야니한’ 정신을 일상화했으며, 이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경계심 없이 다가가 일손을 나누고 음식을 권하는 환대 문화로 정착되었습니다. 거친 대지가 주민들을 강하게 만들었다면, 서로를 향한 연민은 그들을 따뜻한 공동체로 묶어준 셈입니다.

▌Travel Analysis by Professor Bion
DailyToc Travel Essay. 변교수에세이 – 나누어야 완성되는 풍경, 일로코스의 미학
이번 에세이에서는 필리핀 촌캉스의 마침표를 찍는 일로코스 여정을 통해, 고립된 자아를 깨고 공동체라는 거대한 그물 안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그리움과 연대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고자 합니다.
- 카푸르푸라완의 백색 암석은 억센 파도를 견디며 자신을 깎아내어 비로소 예술이 되는 인간 고난의 상징적 지질학입니다.
- 팍다닥리스의 종소리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어주는 존재론적 부름이자 생존의 화음입니다.
- 사탕수수밭의 뜨거운 열기는 노동의 고통을 달콤한 발리쿠차로 변모시키는 연금술적 인고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 촌캉스의 최종 목적지는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타인의 땀방울과 나의 숨소리가 포개어지는 공감의 영토입니다.
우선 주목할 점은 일로코스의 ‘팍다닥리스’가 보여주는 경제적 효율성의 재해석인데, 이는 주류 경제학이 간과하는 ‘사회적 자본’의 힘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개념원론에서 논의되는 수식적 배분은 소수점 아래까지 정확한 분할을 목표로 하지만, 사방안 해변의 나눔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신뢰와 자애를 기반으로 합니다. 참여한 모든 이에게 잡힌 고기를 나누는 행위는 당장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마을 전체의 결속을 다져 미래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장기적인 생존 전략의 일환입니다.
이어서 고찰할 대목은 노동의 현장에서 이방인이 현지인과 맺는 관계의 깊이인데, 농부 큐레이터 김경진이 보여준 태도는 ‘관찰자’가 아닌 ‘생활자’로서의 진정성을 담고 있습니다. 사탕수수를 베고 그물을 끄는 육체적 피로를 공유할 때 비로소 언어의 장벽은 허물어지며, 서로의 거친 손바닥을 마주 잡는 순간 진정한 여행의 목적이 달성됩니다. 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소비하는 기존 관광의 문법을 뒤엎고,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실존적 행위로서 촌캉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탕수수 수확의 달콤함과 식초의 시큼함이 공존하는 산타마리아의 풍경은, 삶의 양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인간의 성숙함을 상징합니다. 거친 밭에서 흘린 땀방울이 설탕이 되고 다시 식초가 되는 과정은, 고통이 반드시 슬픔으로 끝나지 않으며 시간이 흐르고 정성이 더해지면 깊은 맛을 내는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땀 흘려 일군 이 달콤한 결과물은 결코 혼자서 쟁취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귀하며, 그 나눔의 즐거움이야말로 일로코스를 필리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근원적 힘입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4부작 전체를 갈무리하면, 이번 필리핀 촌캉스는 문명이라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흙과 물, 그리고 사람이라는 원소로 돌아가 자아를 정화하는 세례의 과정이었습니다. 벵게트의 산정에서 시작해 일로코스의 해변으로 이어진 여정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손을 내밀고 작은 수확에도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 속에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9년 차 농부의 투박한 시선이 포착해낸 필리핀의 속살은, 화려한 리조트보다 따뜻한 발루이 전통 가옥의 온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며 깊은 치유를 선사했습니다.
이상의 사유를 갈무리하며 우리는 일로코스의 해안에서 울려 퍼지던 바팅팅 종소리가 텔레비전 화면을 넘어 우리 각자의 메마른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길 소망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들 수 없는 거대한 그물을 함께 당기며 얻어낸 그 풍성한 수확의 기쁨이,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최고의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필리핀 촌캉스의 기록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그들이 보여준 상생의 미학은 우리 삶이라는 또 다른 대지를 일구는 소중한 씨앗이 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