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빚어낸 결정체┃천 년의 세월을 견디는 정직한 단맛의 계보

한국기행 – 1부. 느릴수록 달콤해라┃담양 고택에 흐르는 형제의 쌀엿, 인내로 빚은 고향의 미학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담양의 집성촌에서 천 년을 이어온 전통 쌀엿 제조 과정을 추적하고, 효율성을 거부한 수작업 속에 담긴 가업의 숭고함과 공동체의 가치를 성찰한다.
  • 담양 창평의 고택에서 3대째 이어지는 전통 쌀엿은 갱엿을 고아내는 지루하고도 뜨거운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결정체다.
  • 형 고강석 씨와 동생 고환석 씨가 마주 앉아 엿을 늘리는 작업은 바삭한 식감을 결정짓는 공기 구멍을 만드는 핵심적인 교감의 과정이다.
  • 전통을 버리면 우리 맛도 사라진다는 신념 아래 밤잠을 아껴 가며 가마솥 앞을 지키는 가족의 노동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정성의 영역이다.
  • 단순한 주전부리를 넘어 문중의 삶과 기억을 빚어내는 이들의 리듬은 현대 사회가 잊고 지낸 기다림의 미학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Local & Global Introduction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라는 명성을 가진 전남 담양은 단순히 시간이 멈춘 곳이 아니라, 그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의지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장인들의 거처입니다. 이번 칼럼에서 주목할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내 마을은 천 년 역사를 간직한 고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으며,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마을 곳곳에서 구수한 조청 냄새와 단내가 진동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고강석 씨 가족은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맛을 지키기 위해 현대적인 대량 생산 방식 대신 가장 원초적이고 고단한 수작업을 고수하며 우리 맛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쌀엿을 만드는 과정은 재료의 물리적 변화를 넘어서는 인내의 연속이며, 이는 곧 가족이 함께 써 내려가는 서사시와 같습니다. 밤을 지새워 가며 쌀을 불리고 고두밥을 지어 엿기름과 섞어 삭히는 과정 하나하나에 고강석 씨의 땀방울이 섞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가마솥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갱엿의 농도를 맞추는 그의 모습은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도시의 삶과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며, 우리에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지 묵직하게 질문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형제가 마주 앉아 엿을 늘리며 공기 층을 만드는 밀당의 순간에서 발견하는 정서적 교감입니다. 형 고강석 씨와 동생 고환석 씨가 호흡을 맞춰 엿 가락을 잡아당길 때 생겨나는 미세한 구멍들은 쌀엿의 바삭한 식감을 결정하는 기술적 핵심이자, 형제애라는 보이지 않는 재료가 가미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부서지는 소리까지 맛있다는 이 집 쌀엿의 비밀을 통해, 우리는 사라져가는 전통이 어떻게 현재의 우리를 위로하고 풍요롭게 만드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것입니다.

▌Local & Global The Main Discourse

Local & Global Episode 1. 기본정보
  • 기획 : 정재응
  • 방송일시 : 2월 23일 월요일 오후 8시 40분
  • 촬영 : 김기철
  • 글 구성 : 김정민
  • 연출 : 김강수(프로덕션 미디어길)
  • 주요 배경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 마을(슬로시티)
  • 핵심 주제 : 3대째 가업을 잇는 전통 쌀엿 제조 과정과 형제의 협동을 통한 장인 정신의 구현
Local & Global Episode 2. 가마솥 열기가 빚어낸 인내의 단맛

담양의 겨울은 고택의 장작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며, 고강석 씨의 일과는 가마솥의 물을 끓이는 것으로 문을 엽니다. 전통 쌀엿의 핵심인 갱엿을 얻기 위해서는 쌀과 엿기름이 만나 삭혀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 기다림의 미학은 인위적으로 단축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같습니다. 가마솥 앞에서 쉴 새 없이 주걱을 젓는 고강석 씨의 손길은 단순한 반복 노동이 아니라, 농도가 짙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수행의 과정입니다.

밤잠을 아껴가며 갱엿을 고아내는 과정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정성의 온기를 쌀엿에 불어넣습니다. 전통을 버리면 우리 맛도 사라진다는 그의 말처럼, 수작업을 고수하는 가족들의 고집은 자본주의적 효율성보다 문화적 자부심이 앞선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뜨거운 김이 자욱한 방 안에서 갱엿이 황금빛으로 변해갈 때, 장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고된 노동 끝에 찾아오는 가장 원초적인 성취감을 상징합니다.

쌀엿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는 소박하지만 그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수십 시간의 정직한 시간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고강석 씨가 지키는 가마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도구를 넘어, 가업의 정신을 끓여내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정직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단맛은 혀끝에서 금세 사라지는 인공 감미료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가슴 깊숙이 남는 고향의 풍미를 완성합니다.

Local & Global Episode 3. 형제의 밀당과 바삭한 식감의 비밀

이 집 쌀엿이 유독 유명한 이유는 엿 가락 속에 수많은 공기 구멍을 만들어내는 형제의 환상적인 호흡에 있습니다. 형 고강석 씨와 동생 고환석 씨가 마주 앉아 뜨거운 엿 덩어리를 잡아당기고 접는 과정을 반복할 때, 엿 속으로는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며 미세한 공간을 형성합니다. 이 작업은 엿이 굳기 전 적당한 온도와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하기에, 형제 사이의 묵시적인 약속과 신뢰가 없으면 결코 최상의 품질을 낼 수 없습니다.

형제가 주고받는 눈빛과 손놀림 속에는 수십 년간 함께 엿을 빚어온 세월의 구력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공기 구멍이 많을수록 쌀엿은 치아에 달라붙지 않고 바삭하게 부서지는 최상의 식감을 갖게 되는데, 이는 형제의 찰떡궁합 밀당이 만들어낸 기술적 승리입니다. 부서지는 소리까지 맛있다는 단골들의 평가는 단순히 맛에 대한 극찬이 아니라, 형제가 함께 흘린 땀방울과 협동의 가치에 보내는 찬사와 같습니다.

단순한 주전부리로 치부될 수 있는 쌀엿이 예술의 경지로 승격되는 지점은 바로 이처럼 인간의 육체적 교감이 맛의 핵심이 될 때입니다. 형제는 서로의 호흡을 살피며 엿 가락을 늘리고 또 늘리며,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가장 정직한 단맛의 구조를 설계해 나갑니다. 이들의 환상적인 호흡은 기계가 찍어내는 매끈한 엿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쌀엿에 각인시키는 작업입니다.

Local & Global Episode 4. 느림의 미학이 완성하는 고향의 기억

담양 슬로시티의 리듬에 맞춰 정직하게 만들어진 쌀엿은 도시의 바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고향의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입니다. 고강석 씨 가족이 빚어내는 것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문중의 삶과 역사가 담긴 문화 유산이며, 이를 소비하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느릴수록 달콤하다는 말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느림을 선택한 이들의 겨울은 그 어느 곳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수작업의 가치를 이어가는 가족들의 손길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예우이며, 동시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입니다. 쌀엿이 굳어 가며 내는 맑은 소리는 고택의 적막을 깨우며, 전통의 맛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마을 전체에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정직하게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이들의 삶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인간을 얼마나 품위 있게 만드는지 보여줍니다.

여정의 마지막, 완성된 쌀엿 한 조각을 입에 물면 담양의 바람과 가마솥의 열기, 그리고 형제의 호흡이 한꺼번에 전해집니다. 이 달콤함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느림의 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맛입니다. 담양 창평의 겨울은 이들의 정직한 노동 덕분에 매년 더 깊고 진한 단맛으로 익어가며, 우리에게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Local & Global FAQ Section

Q1. 담양 창평의 전통 쌀엿은 일반 마트에서 파는 엿과 어떤 점이 결정적으로 다른가요?

A1.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재료의 순수성과 공기 구멍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식감에 있습니다. 마트 등에서 유통되는 양산형 엿은 대량 생산을 위해 물엿이나 설탕, 인공 첨가물을 섞는 경우가 많지만, 창평 전통 쌀엿은 오직 직접 농사지은 쌀과 엿기름만을 사용하여 장시간 고아내기 때문에 깊은 풍미와 깔끔한 뒷맛이 특징입니다. 특히 수작업으로 엿 가락을 늘려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미세한 공기 구멍은 엿이 치아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고, 입안에서 가볍게 바스러지는 바삭한 식감을 선사합니다. 이는 기계가 낼 수 없는 수작업만의 정교한 기술적 차이이며, 소화가 잘된다는 점도 전통 쌀엿만의 큰 장점입니다.

Q2. 담양 슬로시티를 방문했을 때 쌀엿 만들기 체험이나 현장 구매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A2.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답게 다양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쌀엿 만들기 역시 사전 예약을 통해 체험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쌀엿은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절적 제약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며, 고강석 씨와 같은 명인들의 작업장에서는 갓 만든 쌀엿을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슬로시티라는 명칭에 걸맞게 서두르지 않고 마을 고택들을 둘러보며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관광 이상의 문화적 가치를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Q3. 전통 쌀엿을 보관할 때 딱딱해지지 않게 유지하거나 맛있게 먹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A3. 전통 쌀엿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관 방법이 매우 중요하며, 공기 구멍을 살려 바삭하게 즐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엿은 습기에 약하므로 밀봉하여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하며, 여름철에는 냉장 보관을 권장하지만 먹기 전 잠시 상온에 두어 자연스러운 질감을 되찾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쌀엿을 먹을 때는 입안에서 녹여 먹기보다는 가볍게 깨물어 그 바삭한 소리와 식감을 먼저 즐기는 것이 풍미를 배가시키는 방법입니다. 또한 엿을 부술 때 나는 맑은 소리는 엿의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니, 소리와 맛을 동시에 음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Local & Global Analysis by Professor Bion

DailyToc Local & Global Essay. 변교수에세이 – 가마솥의 인력과 형제의 척력, 그 사이에서 결정된 단맛의 밀도

서문: 이번 에세이에서는 담양 창평의 전통 쌀엿이 지닌 단순한 미각적 가치를 넘어, 노동의 신성함과 혈연적 유대가 빚어낸 문화적 정체성을 변교수의 시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 쌀엿의 갱엿을 고아내는 행위는 자연의 시간을 인간의 노동으로 치환하여 보존 가능한 에너지로 변환하는 연금술적 과정과 같다.
  • 형제의 밀당은 수평적 협력이 어떻게 품질이라는 수직적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업 승계의 가장 아름다운 물리적 현상이다.
  • 느림의 미학은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거세된 인간적 정성과 감각을 회복시키는 저항적 삶의 방식이자 현대 문명의 결핍을 채우는 처방전이다.
  • 부서지는 소리의 미학은 결과물인 엿보다 그 엿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인내와 합의의 시간이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증명하는 청각적 지표다.

본질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짚고 넘어갈 사실은 우리가 소비하는 단맛의 깊이는 그 맛을 내기 위해 지불된 고통의 시간과 정비례한다는 점입니다. 고강석 씨가 지키는 가마솥의 열기는 단순히 온도를 높이는 열역학적 작용을 넘어, 조상의 지혜와 가문의 명예를 정제하여 하나의 결정체로 응축하는 의례와 같습니다. 기계가 1초 만에 수행할 수 있는 일을 인간이 며칠 밤을 새워 수행할 때, 그 결과물에는 기계가 가질 수 없는 ‘혼’이라는 비물질적 가치가 각인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명품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은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민낯은 바로 형제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신뢰로 승화시킨 협동의 기술입니다. 엿 가락을 잡아당기는 형제의 손놀림에서 척력과 인력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순간은, 서로의 힘을 믿지 못하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공동체적 성취의 정점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주의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며, 가업이 왜 단순한 직업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요새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시야를 조금 더 넓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슬로시티라는 공간이 제안하는 생존 전략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느림을 택한다는 것은 도태가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구멍(공기층)을 삶 속에 만들어내어 훨씬 더 풍요로운 질감을 확보하려는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고강석 씨 가족의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라져가는 전통의 가치를 현재로 소환하여 도시인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의 미각적 권리를 되찾아주는 공공적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시대적 흐름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정직함’이라는 원초적 미덕입니다. 땀 흘린 만큼만 달콤해질 수 있다는 쌀엿의 진리는, 요행과 투기가 판치는 현대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경종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성의 핵심입니다. 지문과 바꾼 정직한 노동이 주는 단맛은 혀끝의 쾌락을 넘어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래된 단골집을 찾아 헤매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지혜는 삶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며 무언가를 빚어내는 삶의 경건함입니다. 담양의 쌀엿 형제가 보여준 밀당과 인내의 시간은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가마솥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주걱을 저어야 할지 가르쳐줍니다. 느릴수록 더 깊고 달콤해진다는 그들의 믿음이 오늘날 차가운 콘크리트 숲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스한 온기와 함께 삶을 긍정할 힘을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톡 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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