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호령한 해동성국의 기상 – 2부. ‘해동성국’으로 불린 발해의 전성기┃제국의 팽창과 북방 문명의 황금기
당나라조차 두려워한 북방의 강자로 우뚝 서며 광활한 영토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발해 전성기의 실상과 그 힘의 근원을 분석합니다.
- 해동성국 Sea-Exalted Kingdom 의 위용은 선왕 대에 이르러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당나라로부터 바다 동쪽의 성성한 나라라는 칭송을 받은 발해의 최전성기 데이터입니다.
- 3성 6부와 5경 15부의 통치 체제는 당의 문물을 수용하되 명칭과 운영 면에서 고유의 주체성을 유지하며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한 고도의 행정 시스템입니다.
- 북방 실크로드의 주역은 거란과 습 그리고 흑수말갈을 복속시키고 당과 일본을 잇는 동북아시아 무역망을 장악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룬 제국의 저력입니다.
- 찬란한 상경용천부의 문명은 당의 장안성을 모델로 삼았으나 온돌 등 고구려의 전통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북방 문화를 꽃피운 발해인의 지적 성취입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Introduction
이번 칼럼에서는 발해가 건국의 혼란을 딛고 일어나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축으로 성장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황금기의 실체를 조명합니다. 대조영의 건국 이후 무왕과 문왕을 거치며 발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제국의 기틀을 확립했습니다. 특히 선왕 대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고 북쪽으로는 흑룡강에 이르는 광활한 대륙을 지배하며 당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발해의 전성기는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체제 정비와 문화적 성숙이 동반된 고도의 문명화 과정이었습니다.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그 명칭과 운영 방식에 유교적 덕목을 가미하여 발해만의 색채를 입혔습니다. 이는 주변 민족들을 아우르는 강력한 통치 철학이 되었으며 발해가 만주 대륙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발해를 잊힌 변방의 역사가 아닌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를 주도했던 당당한 제국의 역사로 다시 읽어내야 합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세련된 외교 그리고 독창적인 문화가 어우러진 발해의 전성기는 우리 민족이 가졌던 가장 넓고 깊은 기상을 상징합니다. 2부에서는 발해가 어떻게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으며 그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정밀하게 분석하겠습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The Main Discourse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pisode 1. 기본정보
- 전성기 핵심 군주 제10대 선왕 대인수 시대에 최대 영토를 개척하고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음
- 중앙 통치 체제 당의 제도를 수용하여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의 3성과 충인의지예신의 6부를 운영
- 지방 행정 조직 5경(상경 중경 동경 남경 서경)과 15부 62주의 정밀한 수직적 관리 체계 확립
- 영토 확장 범위 남쪽으로는 대동강과 원산만 북쪽으로는 흑룡강 서쪽으로는 요동에 이르는 광역 지배
- 대외 교역망 일본도 신라도 영주도 조공도 등 5개의 주요 교통로를 통한 국제 무역 활성화
- 문화적 정체성 당의 장안성을 본뜬 도성 설계와 온돌 및 연꽃무늬 기와 등 고구려 양식의 결합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pisode 2. 3성 6부의 주체적 수용과 제국 행정의 완성
발해는 당나라의 선진 행정 체계인 3성 6부를 도입하되 그 내실은 발해만의 독자적인 유교적 가치관으로 채웠습니다. 당나라가 기능 중심의 명칭을 사용한 것과 달리 발해는 충부 인부 의부 등 도덕적 덕목을 부서 명칭으로 채택하여 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게 하여 권력의 집중과 효율성을 동시에 꾀한 것은 발해 행정 시스템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체제 정비는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되었습니다. 중앙의 지시가 5경 15부를 거쳐 지방 말단까지 일관되게 전달되는 수직적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발해는 유목 지대의 가변성을 복복하고 안정적인 제국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력 지배를 넘어 문치에 기반한 제국 경영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하며 발해가 장기간 북방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데이터적 관점에서 발해의 관제 운영은 동북아시아에서 당나라와 대등한 문명국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지표입니다. 그들은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복제하지 않고 자신들의 토양에 맞게 변용하여 국가 운영의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러한 주체적 수용은 발해 지배층의 높은 지적 수준을 반영하며 거대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 기술이 정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pisode 3. 해동성국의 경제력과 북방 무역 패권의 장악
발해는 만주와 연해주를 잇는 광대한 네트워크를 장악하여 동북아시아 경제의 거대한 허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모피 인삼 불상 등을 주요 수출품으로 삼아 당나라 및 일본과 활발히 교역했습니다. 특히 일본과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외에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했습니다. 발해의 무역선은 거친 동해를 건너 일본의 서해안에 닿았고 그곳에서 발해의 문물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발해의 경제적 자립은 강력한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되었으며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거란이나 말갈의 여러 부족이 발해의 질서 아래로 들어온 것은 무력 때문만이 아니라 발해가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과 교역의 기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발해는 북방의 자원을 수집하여 가공하고 이를 국제 시장에 유통하는 고도의 무역 전략을 통해 제국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결국 해동성국이라는 칭송은 발해가 가진 압도적인 경제력과 문명 수준에 대한 주변국들의 경외심이 담긴 표현입니다. 바다 동쪽에서 융성한 나라라는 뜻은 발해가 단순히 군사적인 강국을 넘어 경제와 문화가 조화를 이룬 성숙한 국가였음을 의미합니다. 발해의 상인과 사신들이 누볐던 그 길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륙 경영의 원형을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적 데이터입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pisode 4. 상경용천부의 위용과 고구려 문화의 창조적 계승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는 당대 동아시아에서 장안성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계획도시였습니다. 격자형 도로망과 거대한 성벽 그리고 화려한 궁궐은 제국의 자부심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정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석조 건축물 내부에는 고구려로부터 이어진 온돌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지붕을 장식한 기와 역시 고구려의 기상을 담은 연꽃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건축과 예술의 융합은 발해가 외래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어떻게 지켜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선언입니다. 그들은 당의 세련미를 받아들여 제국의 외양을 갖추었지만 발해인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인 온돌과 불교 예술에서는 고구려의 전통을 고수했습니다. 발해 석등의 웅장함과 이불병좌상의 섬세함은 북방 불교 예술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며 고구려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킨 발해인의 창의성을 증명합니다.
결국 발해 문명은 고구려의 야성과 당의 세련미가 만나 탄생한 북방 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척박한 북방의 환경을 문명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곳에서 피어난 문화적 에너지는 동북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상경성 터에 남아 있는 거대한 주춧돌은 비록 제국은 사라졌으나 그들이 꿈꿨던 문명의 크기가 얼마나 장대했는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pisode 5. 추천영화
제국의 전성기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북방 문명의 찬란함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서사적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 대조영 Dae Joyoung 2006 드라마 후반부에서 발해가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주변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으며 강대국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발해 전성기의 기틀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시각 자료입니다.
- 비천무 Bichunmoo 2004 드라마판 비천무는 발해 유민들의 후예들이 대륙을 무대로 펼치는 암투와 사랑을 통해 발해가 남긴 역사적 잔영이 원나라 시대까지 어떻게 이어졌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독특한 서사를 제공합니다.
-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 2010 당나라 전성기의 화려한 도성 문화를 묘사한 이 작품은 발해 상경성이 모델로 삼았던 장안성의 위용을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함으로써 발해 문명이 지향했던 물리적 스케일을 짐작하게 합니다.
- 묵공 Battle of Wits 2006 거대한 성곽을 방어하고 공략하는 치열한 지략 대결은 발해의 5경이 가졌던 군사적 요새로서의 기능과 북방 제국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쏟았던 공학적 노력을 환기시킵니다.
- 영웅 Hero 2002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압도적인 영상미와 정복자의 고뇌는 발해 선왕 대에 이루어진 거대한 영토 확장과 그 과정에서 제국이 품어야 했던 다양한 민족들의 운명을 대서사시적 관점에서 보게 합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FAQ Section
Q1. 발해는 당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베낀 것 아닌가요?
A1. 아닙니다. 외형적인 틀은 차용했을지 모르나 그 운영의 핵심인 정신은 발해만의 독자적인 색채로 채워졌습니다. 3성 6부의 명칭을 유교적 덕목으로 바꾼 것이나 정당성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권력 구조를 만든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는 현대 기업이 글로벌 표준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되 기업 고유의 핵심 가치를 녹여내는 것과 같습니다. 발해는 당의 시스템을 자신들의 통치에 최적화된 도구로 개조하여 사용한 주체적인 국가였습니다.
Q2. 신라와 발해는 서로 남남이었나요?
A2. 표면적으로는 신라가 발해를 북적이라 부르며 경계하고 경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교역과 사신 왕래가 지속된 남북국 시대의 파트너이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발해를 견제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신라도라는 교통로를 통해 물자를 교환했습니다. 두 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공유하는 민족적 동질감을 내포한 채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맞추는 두 개의 기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Q3. 발해가 갑자기 멸망한 이유는 백두산 폭발 때문인가요?
A3. 과거에는 백두산 폭발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내부적인 분열과 거란족의 급격한 성장을 더 결정적인 원인으로 봅니다. 제국이 비대해지면서 지배층 내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고 이 틈을 타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의 기병 부대가 상경성을 기습 점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자연재해보다는 정치적 부패와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 실패가 해동성국의 종말을 불러온 핵심 데이터입니다.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Analysis by Professor Bion
DailyToc Founding and Foreign Relations of Balhae Essay. 변교수에세이 – 제국의 황혼이 남긴 질문, 시스템은 왜 무너지는가
이번 에세이에서는 해동성국이라 칭송받던 발해가 정점에서 마주했던 성취와 그 이면에 숨겨진 균열의 징후들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 문명화의 역설은 야성적인 북방 세력이 정교한 행정 시스템을 갖추며 문명화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관료적 경직성과 권력의 부패 문제입니다.
- 소프트파워의 승리는 발해가 단순히 칼로만 지배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덕목과 불교 예술이라는 세련된 문화를 통해 주변 민족의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는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국제 정세를 읽어내고 국익을 극대화했던 발해 외교의 고도의 지략입니다.
- 기술 혁신과 생활상은 척박한 북방 환경을 온돌이라는 고유의 난방 기술로 복복하며 정주 문명을 일궈낸 발해인들의 실용주의적 천재성입니다.
본질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짚고 넘어갈 사실은 왜 발해가 이룩한 그 거대한 성취가 우리 기억 속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워져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승리자의 역사인 신라 중심의 사관에 익숙해진 나머지 패배하고 떠난 발해의 가치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는 발해 스스로가 붙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 경쟁국이었던 당나라가 인정한 객관적 평가였습니다. 이는 발해가 동북아시아에서 가졌던 실질적인 영향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발해의 전성기가 단순히 영토의 크기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안정성에서 기인했다는 점입니다. 3성 6부라는 중앙 집권적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 발해는 만주 벌판의 흩어진 에너지를 국가라는 용광로에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내부 권력 투쟁으로 마비되기 시작했을 때 거란의 침공은 단 며칠 만에 제국의 숨통을 끊어놓았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라도 내부의 소프트웨어가 고장 나면 외부의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역사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고대사의 비극에만 머물지 않고 시야를 조금 더 넓혀 현대의 거대 조직이나 국가 경영의 문맥에서 보아도 매우 소름 끼치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전성기에 도달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이며 시스템의 명칭보다는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발해가 6부의 명칭을 유교적 덕목으로 바꾼 것은 권력에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려는 시도였으나 후기 지배층이 이를 망각했을 때 제국의 수명도 다했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발해 문명은 우리 역사에서 대륙 지향적 야성이 가장 세련되게 꽃피운 순간이었습니다. 고구려의 거친 숨소리가 당의 정교한 질서와 만나 탄생한 발해의 예술과 제도는 우리 민족의 지적 유연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표본입니다. 우리는 발해를 통해 우리가 원래 가졌던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민족적 DNA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발해가 남긴 해동성국의 꿈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우리의 사유 범위를 다시 대륙으로 넓히는 일입니다. 상경성의 차가운 주춧돌 위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일은 잃어버린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역사의 자부심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지혜는 문명은 계승될 때 의미가 있으며 그 계승의 주체는 과거를 기억하는 오늘의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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